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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이다.

LV11 안네의일기

2018-06-15 오후 12:04:33 | 조회 : 2333


한창 열정이 끓어 오르던 이십대, 서초동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며 너무나 큰 문화적 충격에 휩싸인 적이 있었다. 내 자식이라면 물불 가리지 않고 덤벼드는 부모들을 감내하기 어려웠던 때다. 하나부터 열까지 내 아이만을 봐달라는 무서운 부모들이 한창 스트레스였던 시기, 전화벨만 울리면 가슴이 섬뜩섬뜩했던 일이 떠오른다. 직업병이다 싶을 만큼 심적으로 부담이 되었다.

 

그 당시, 일주일을 멀다하고 나에게 전화를 하는 친구가 있었다. 나름 똑똑하고 미래에 대한 식견도 있었던 친구였는데 결혼하여 아이를 낳고 나서는 모든 대화의 주제가 자신의 아이였다. 일주일에 한번씩 자신의 아이의 놀라운 능력들을 풀어 내면, 나는 영혼없는 대답을 하며 들어 주었다. 대부분 내 아이가 똑똑하다, 빠르다, 놀랍다는 감탄의 연발사였는데 7년 내내 같은 레파토리였다.

 

그러던 어느날, 부모에게 솔직한 조언을 했다는 이유로 인민재판 비슷한 비난을 받고 돌아온 날, 그 친구에게서 또 전화가 왔다. 아이 그림이 범상치 않아 예술의 전당 00교수님의 특강을 신청하고 왔는데 영재인 것 같다는 소리를 들었다는 것이다. 그런면서 삐삐(휴대폰 이전의 통신수단)를 갖고 다니던 나에게 메일로까지 평가 내용을 봐달라고 하였다. 평소같았으면 예전처럼 보이지도 않는 고개를 끄덕이며 진심으로 들어줬을지 모르겠다. 그런데 그 순간, 하루의 일과가 겹쳐지며 친구에게 폭언이 쏟아졌다.

 

그만 좀 할 수 없니? 어떻게 아이 인생이 오로지 지금만 있어? 이 아이가 어떤 사춘기를 거칠지, 이 아이가 어떤 친구를 만나게 될지, 이 아이가 막상 커보고 나니 엄마가 그리 대단한 사람이 아닐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될지, 그래서 그동안 엄마가 시켰던 모든 것에 반항 깃발을 들게될지, 어떻게 알고 모든 것을 네가 시키는대로, 네 맘대로 좌지우지 될 수 있을거라고 믿니? 이제 그만 좀 해라. 니 애도 좀 놔 주고, 나도 좀 놔 줘라. 엄마의 인생은 없고 오로지 아이 인생만 있는 것처럼 사니... 그렇게 사는 엄마 모습은 정상인 것 같니? 어떻게 자식 장담을 그리 쉽게 하니? 진득하니 지켜보고 많은 어려움 예상하며 겸손하게 살아갈 수도 있잖아. 네 아이 그림, 지극히 색깔 잘 칠한 아이 그림 정도야. 정말 예술가로 키우고 싶으면 특강 좀 그만 찾으러 다니고 다른 작품 관람 많이 시켜. 그게 내가 해 줄 수 있는 마지막 조언이다. 섭섭하게 생각하지 마. 이런 말 해주는 사람 없을 때 하는 말이 진짜 조언이야

 

말을 하면서도 뭔가 잘못되었다 스스로 느끼고 있을 때 쯤, 전화기 너머로 흐느끼는 소리가 들려 왔다.

넌 많은 애들을 봐 왔잖아. 나에게는 내 아이가 처음이란 말이야!”

 

내 아이가 나에게는 처음이란 말이야...

 

그 말을 듣는 순간, 망치로 한 대 얻어 맞은 느낌이 들었다. 그래, 그 아이가 첫째든, 둘째든 모든 엄마들에게 처음 경험이다. 같은 아이를 두 번 키울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모두에게 첫 경험인 아이들이다. 그래서 놀랍고, 그래서 신기하고, 그래서 전부일 수 밖에 없는...

 

일주일은 마음 보듬으며 사과했던 것 같다. 내 자식이 생기고 난 다음부터 내가 한 말이 얼마나 엄마들의 심정을 헤아리지 못한 말이었는지 뼈져리게 느끼면서 말이다. 그렇다고 이후에 친구의 자식 자랑이 꺾였던 것은 아니지만 아이의 성장과 함께 서서히 자랑은 고민으로 바뀌었다. 어려운 사춘기를 보냈고 기대와 다른 아이의 행보에 마음 무너지며 울며 전화하는 일도 늘어났다. 그럴 때마다 그 친구가 나에게 울면서 외쳤던 말을 몇 번을 다시 되풀이 해 주었나 모른다.

 

처음 겪는 일이라서 그래. 지나고 나면 또 그저 경험했던 일들 중 하나가 될 뿐이야. 매번 성공 트랙이라면 아이나 너나 어떻게 성숙하고 성장하겠니...육아 전문가들은, 상담가들은 지 자식 다 고민없이 키울 줄 알지? 유명인사들 가운데 너보다 더 큰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 많아. 정신과 의사도 내 자식 마음 분석 못하고 전문 상담가도 자기 자식 때문에 뒷목 잡더라. 유명한 교육계 스승이라는 분도 내 자식은 오토바이 합의 보러 다니는 게 일이야. 난 너무 편하고 쉽게 애 키웠어요. 하는 사람이 어딨어? 있다 하더라도 그 사람의 성격이 수월한 경우나 본인이 공부하는 모습 보이며 함께 해서 애가 따라 온거지. 그러니 모두 내려 놓고 천천히 지켜 봐 줘. 니가 할 도리 다한다는 생각으로 일관성 있게 끌고 가는 것 외에 답은 없어. 애 탓하지 말고 그리 걱정되면 너부터 투지폰으로 바꾸고 애 공부할 때 같이 공부해. 다른 환경은 고려하지 않고 왜 애만 탓해.”

 

친구를 툴툴 거리며 변명 비슷한 배부른 소리를 내었다.

나도 예전에 열심히 공부했었는데 무슨 소리야

예전에 열심히 공부한 모습을 지금의 니 애가 어떻게 봤겠어? 중요한 것은 현재의 네 모습이지...그러니 현재의 너도 자신 없으면 애탓도 그만 해라. 운동이라도 하면서 현재의 너를 보듬어 주든지, 아니면 아이에게 향한 신경을 조금은 돌릴 수 있는 다른 일을 찾아 봐.

 

주거니 받거니 하며 자식 키우는데 답은 없다며 전화를 끊었다. 입시 전에 그렇게 점집을 돌아다니던 친구는 결국 점쟁이가 말한 대학과 상관없는 곳에 아이를 보내게 되었고 이제는 자기가 뭐하러 그렇게 애 뒷바라지를 했었는지 후회가 된다고 했다. 머리 크고 나니 부모 알기를 우습게 알고 얼굴 보기 힘들다며...그러면서도 군대를 가게 된 아이 앞에서 한바가지 눈물을 흘리며 매일 인터넷을 들여다 보며 아들 소식을 기다리고 있다.

 

우리는 모두 이렇게 아이를 키우고, 떠나 보내기를 이리도 힘들어 한다. 나도 마찬가지고 세상의 모든 엄마들이 마찬가지다. 아빠는 뭐하냐고, 왜 모두 아이 교육은 엄마 책임이라하냐고 정치적으로 세상을 탓하고 부르짖어도 아이 앞에서는 모두 세상에 하나뿐인 답없는 엄마가 된다.

 

고민하고 좌절하고 오분전 나를 못이겼던 내 성격에 나를 탓해도 우리들의 아이는 콩나물처럼 무럭 무럭 커나간다. 꼴보기 싫어 휴대폰을 던지고 내가 내는 목소리가 맞나 싶을만큼 쇳소리를 내고 나서도 잠자는 아이를 보면 미안해 내 가슴 내가 치는, 그 이름이 모든 아이를 처음 키우는 엄마라는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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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V13 기쁜새싹
그러게요... 첫째*****************************************************
2018-06-15 오후 12:54:21

LV4 dojinmom
진짜로 아이 키우는***********************************************************************
2018-06-15 오후 2:58:35

LV29 휴먼스토리
우리나라 엄마들의 ****************************
2018-06-16 오전 11:3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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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V10 레몬테이블
안네님 글을 읽으면**********************************************************
2018-06-16 오후 8:39:26

LV14 레이첼999
그러게요. 남 얘기****************************************
2018-06-17 오전 2:14:47

LV1 lavan
정말 공감되네요 그**********************************
2018-06-17 오전 9:4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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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V1 rina772
진짜 칼럼쓰셔도 될*******************************************************************************************************************************************************************************************************************************************************************************************************************************************
2018-06-17 오전 11:22:13

LV∞ 스터디홀릭  스터디홀릭 운영자
축하드립니다! 이 **************************************************************
2018-06-17 오후 9:46:47

LV6 외교관맘
어제의 제 모습을 **************************************************************************
2018-06-19 오전 2:5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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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V4 세계여행자
좋은글 마음깊이 잘**************
2018-06-20 오후 11:49:23

LV1 희호현맘
요즘들어 내가 엄마*******************************************************************************
2018-06-24 오후 10:10:53

LV1 jinheene72
정말 공감200퍼입***********************************************
2018-07-03 오후 11:2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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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V26 샐리쌤!!
중간고사 잘보더니 ****************************************************************************************************
2018-07-06 오전 8:11:35

LV9 iolo92
아이를 키우면서 정*********************************************
2018-07-12 오전 11:46: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