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내린 결정으로 삶을 인도하라. 

엄마, 하고 부르면 마음부터 짠하다. 단지 낳아주고 키워주신 분이라서가 아니다. ‘엄’하고 입술을 오므리는 순간, 우리에게 지금까지 나눠주셨던 애절한 희생이 전율처럼 온몸에 전해온다. 우리에게 그렇게 절실한 존재가 또 있을까, 엄마 같은 존재가.

엄마야말로, 우리 생애 가장 든든한 버팀목이다. 앞으로도 아주 오랫동안 그래주실 것이다.

아니다. 그렇지 않다. 그래서는 안 된다. 이제는 엄마를 넘어서야 한다.

요즘 중고등학생 엄마들을 보면 꼭 연예인 매니저 같다. 다이어리에는 스케줄을 빽빽이 적어놓고, 여기저기 휴대폰으로 전화를 하면서, 아이들을 뒷자리에 태우고 이 학원 저 학원 실어 나르느라 바쁘다. 대학에 들어가기 전까지 엄마의 통제를 벗어 날 수 있는 사생활은 없다. 대다수 우리나라 엄마들의 지상목표는 자식을 좋은 대학에 보내는 것이므로, 이렇게 모든 생활에 사사건건 간섭하는 것을 엄마들은 물론 당하는 아이들도 당연하게 여긴다.

심지어 이건 ‘세계적인’ 현상이다.

엄마가 시키는 대로만 해, 나중에 후회하지 말고…그러게 아빠가 뭐랬어…

하루 한 번은 전화해라…인맥이 중요하니까 친구를 잘 사귀어야 돼…그런 애랑 놀지 말라니까…어디서 딴 짓하다 이 시간에 들어와…내가 너만 했을 땐…해달라는 대로 다 해주잖아…그 학과는 취직이 안 된다니까…지금이라도 다시 의대 가라…요즘엔 중국어가 좋단다…공부해야지, MT는 무슨…우리 집안은 대대로…너 하는 걸 보고 있으면 안심이 안 돼…엄마가 학원 끊어놨어, 이 학원이 고시 많이 합격 시킨다더라…남자가 꿈이 커야지…다 너 잘되라고 그러는 거지…

서울대학교 아동가족학과 친구들이 2010년에 했던 학생 심포지엄의 홍보 포스터에 등장하는 문장들이다. 이 심포지엄의 제목은 ‘어른 아이, 사랑에 빚지다 : 대학생 자녀가 인식하는 부모의 과잉기대, 간섭이 자녀에게 미치는 영향과 그로 인한 갈등’이었다. 이 연구는 스스로를 성인으로 인지하고 독립하려는 욕구는 있으나 부모로부터는 여전히 생활전반에 걸쳐 직접적인 간섭을 받는 대학생을 ‘어른 아이’라 명명하고, 이 어른 아이들이 받는 부모의 기대와 간섭을 실증적으로 분석했다. 오늘날 대학생 부모의 과도한 간섭은 한마디로 ‘사랑의 빚’이라는 것이다.

아무리 세계적인 현상이라고 하더라도, 이건 전혀 바람직하지 않다. 엄마에게도, 그리고 우리에게도. 헬리콥터처럼 자식 주위를 맴돌아야 하는 ‘엄마의 인생’은 논외로 하더라도, 우리는 엄마를 반드시 넘어서야 한다. 인생이란 결국 엄마가 다 알아서 해주기로 했던 ‘공부 이외의 나머지 것들’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20대들의 부모의 나이는 대략 40대 후반에서 50대 후반까지다. 내가 이 연배라서 잘 안다. 그대의 엄마아빠들은 2000년대와는 전혀 다른 시대를 살아낸 세대다. 엄마가 살아온 세상과 그대들이 살아갈 세상은 완전히 다르다. 엄마들이 길러온 시대감각으로는 이제 그대의 미래를 지시할 수 없다.

게다가 부모란 어쩔 수 없이 보수적이다. 설령 시대관이나 가치관이 현대적이더라도, 자식의 미래를 두고 리스크를 감당할 수 있는 담 큰 부모는 없다. 자식의 인생 앞에서, 엄마 가슴은 한없이 작아진다. 그래서 엄마들은 잘 풀리지 않아도 ‘먹고살 수는 있는’ 매우 안정적인 직업을 선호한다. 성공 가능성을 최대화하기보다는 실패 위험을 최소화하는 의사결정을 내리는 것이다. 결국 엄마들이 제시하는 자식의 미래란, 항상 비슷비슷하다.

백보 양보해서 설령 엄마의 판단이 옳다고 하더라도, 그대가 엄마를 넘어서야 하는 당위는 분명하다. 내 인생의 주인은 나이기 때문이다. 희로애락으로 촘촘히 짜인 삶을 기꺼이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그 삶이 ‘내가 내린’ 결정이어야 한다.

엄마를 넘어서라. 명심하라. 지금부터는 엄마가 그대의 가장 큰 적이다. 이제 엄마라는 목발을 놓고, 힘들더라도 그대의 발로 단단히 서라. 처음에는 엄마의 부재에 나 홀로 남은 불안이 엄습하고, 금단현상마저 올지도 모른다. 하지만 한 발짝, 한 발짝 자신의 걸음을 걸어야 한다. 그 경주의 끝에 비로소 온전한 그대가 있다.

-아프니까 청춘이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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