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말고사 끝낸 중3 아이들, 요새 정말 노느라고 정신 없네요. 아직 대학입시가 멀어서 그런가, 아직도 이런 생각을 하는 아이들이 많습니다. 그럼 전 이렇게 주로 대답해줍니다.
대학은 꼭 가야하나요? -- 통계를 보니 현재 대한민국의 80%가 대학에 진학한단다. 네가 나머지 20%에 속하여 대졸자라는 신분 없이 사회생활을 능히 감당할 수있을 것 같은 지 생각해 봐라. 판단하기 힘들지?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게 어렵다고 생각하니 더 배우겠다고 대학 가는 건데, 넌 다른 승부수가 있니?
꼭 좋은 대학을 가야하나요? 어디 가든 열심히 만 하면 되는 것 아닌가요? -- 내 경험을 얘기해 줍니다.
우리 집안은 학벌(?)을 강조하는 집안이었습니다. 저희 집안에서 학벌이라는 것에 가장 부정적인 생각(?), 학벌이 뭐가 중요해 실력이 제일이지 라는 생각이 가장 확고했던 사람이 저였습니다.작고하신 선친께서도 S대 출신이셔고, 저도 나름 공부해서 학력고사를 쳤고 애매한 점수에 과를 바꿔서라도 S를 원하시는 선친의 뜻과는 달리, 전공을 고집하여 신촌의 Y로 진학하였습니다. 그 때에는 당연히 졸업하면 취직 되는 줄 알았고, 실제로 왠만한 대학졸업생들은 다 취직 되는 것 같더군요. 무사히 여러회사중에서 골라서 대기업주력회사에 취직하게 되었습니다.
시간이 흘러서 저도 승진을 하고 초년 과장쯤되니(당시 과장은 지금 과장과는 끗발이 틀렸지요. 나름 인사권과 예산권을 가지고 있었으니) 제 밑으로 대졸사원 ,대리 포함하여 8명을 거느리게 되었습니다. 제 인생 처음 으로 인사평가를 하려고 직원들 8명의 개인기록을 보다가 졸업학교를 무심히 보던 중 발견하게 됩니다. 8명의 학벌이 S 4명에 Y 2명, K 2명이더군요. 우리가 졸업할때와는 달리 그 때에는 취직이 어려워졌던 때였습니다. 그 여파였는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회사가 잘 뽑는구나 정도로만 생각하고 넘어갔는데.....
년말에 그룹공채 서류심사작업에 해외영업파트에서도 나와달라고 해서 햇병아리과장인 제가 나갔었습니다. 제 기억에 1900명 뽑는데 수만명이 지원했던 것으로 기억하고, 면접전 1차 서류심사 분류작업에 동원된거죠. 비밀엄수 서약 등 간단한 교육을 받고 ,산처럼 쌓인 입사지원서류 앞에 앉았습니다.(속으로 이걸 언제 다 보나 생각했죠)
인사팀 당당자가 강단에 올라 서류 분류지침을 얘기합니다.
자! 졸업학교란을 봐주세요.
그리고 SKY 출신 지원자 서류 뽑아주세요. --- 작업 진행.
다 하셨으면 여기 대학들(정확히 하지는않으나 요새로 치면 인서울 대학 정도인 것으로 기억함) 출신 중에서 학점 몇점 이상 뽑아주세요. --- 작업진행.
그리고 여기 reference달려있는 지원자들(소위 빽있는 지원자들) 리스트 보고 뽑아주세요.-- 작업진행.
자 다들 하셨지요. 그럼 나머지 서류 들은 옆에 라면 박스 보이시죠. 거기에 버려주시고 집에 가셔도 됩니다. (엥! 벌써 끝난거야?)
제가 처음으로 학벌이라는 것을 사회에서 체험하고 ,속으로 가슴을 쓸어 내리면서 학창시절 저를 밀어 붙였던 선친을 떠올렸던 사건입니다.
사회가 학벌위주로 되면 좋은 사회가 아니네 말도 많지만, 회사는 자선단체가 아니다. 이런 방법으로 꽤 많은 숨은 보석들이 묻혀버릴 것이고, 또 우리가 학벌로 뽑은 사람들 중에서 정말 무능한 사람들로 후회할 수도 있지만, 입시라는 똑같이 주어진 과제를 이미 한번 잘 치러낸 사람들에게 베팅하는 것이 확률적으로 성공률이 높다고 회사는 생각한다. 넌 다른 방법있니? 다음 날 술좌석에서 만난 대학 선배인 인사과장과 얘기중에서 나온 말이죠.
솔직히 그 사건 이후로 학벌에 대해서는 다시 생각하는 계기가 되엇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