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있는 용인지역은 고교비평준화지역입니다. 중학교 내신성적순으로 학교를 선택 지원하여 진학합니다. 그 중 최고의 갑은 "수지고등학교" 2013 수능 언수외 2등급이상 비율 46.8%로 경기도 일반고중 광명진성고에 이어 당당 2위이고(2위이지만 사실 3위 이하의 학교들과는 확연히 차이를 보입니다. 3위 - 10위 학교의 비율이 20%대인 것에 비해서 수지는 46.8%이니...), 중학교 내신성적으로 적어도 전교20등안에 들어야 원서 내밀수가 있고, 학습분위기,입시실적 등도 왠만한 특목고에 절대 밀리지않는 학교입니다. 중학 때 나름 잘했던 아이들이 몰리는 학교이다보니 내신 경쟁 역시 치열하다못해 처절하기 까지 합니다.
작년 이맘때 쯤이었습니다. 한 여학생이 잇습니다. 딸이 수지고에 다니니 주위의 부러움을 받고 있지만 부모속은 까맣게 탑니다. 중학교 전교 한손가락권의 내신을 받고 수지고에 들어 갔고, 의대가 목표였던 딸이 워낙 좌고우면하지 않고 공부에 전념하는 아이라서 그 심한 내신경쟁도 어느정도 극복하리라 여겼습니다. 하지만 1학기 주요과목의 평균등급이 6등급입니다. 제일 잘 받은 과목의 등급은 4등급. 그것도 중간고사보고 놀라서 개인과외,쪽집게과외 붙여서 만들어낸 점수이고(과학) 국영수는 여전히 6입니다. 학교 수업에 충실하지 않은 것도 아닙니다. 수업시간에 항상 촉각을 곤두세움에도 불구하고, 나름 열심히 공부 밖에 안함에도 불구하고 성적이 6 입니다. 모의고사 성적도 하향세입니다. 물론 학년이 틀리지만 위의 46.8%에 해당이 안됩니다. 열심히했음에도... 속은 까맣다 못해 하얀 재가 됩니다.
이 여학생과의 첫만남 이후 저의 느낌은 이랬습니다. " 어! 얘가 어떻게 수지에 들어갔지?"
중학때 성적이 전교권이었다는데 실제로는 중학교과정이 전혀 안되어 있었습니다. 제 판단이 의심스로워서 마침 집에 들른 제 딸에게 영어를, 아내와 아들에게 수학을 확인해보라고 부탁했는데(미리 아무런 언질도 주지 않고) 두 아이의 반응이 비슷합니다.
딸 : 쟤,수지 다니는거 맞아요? 수지 얘들 수준이 원래 이렇지 않다면서요
이들 : 중학교 때 순전히 외워서 수학 공부한 애예요. 잰 수학공부 다시해야 대학갈거예요.
아내 : 이과지망? 도시락 싸들고 가서 말려야겠네
대책은 대책이고, 개인적으로 아이가 이렇게 된 원인이 궁금햇습니다. 그래서 한 일년간 주위 3곳의 중학교를 주목해 봤습니다.
제 주위에는 3곳의 중학교가 밀집해 있습니다. 셋 다 공립인데;
- D1중 : 학생수가 제일 많습니다. 3곳중 시험 평균이 제일 낮습니다. 즉 시험이 어렵다는 얘기이지요.
시험 전에 수학프린트 12장씩 나눠주고 학교에서는 거의 풀어주지 않습니다. 학기중에도 선생님들이 자주 바뀌어서 학생들의 불만이 많고 학부모들의 만족도도 제일 떨어지는 학교입니다.
- H중 : 학생수가 제일 적습니다. 혁신학교라고 합니다. 3곳중 시험 평균이 제일 높습니다. 처음에 이 학교 학생들의 수학프린트를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 왜 이렇게 고난도야?" 학교에서 역시 풀어 주지도 않습니다. 답만 불러준답니다. 그런데 수학평균을 보고 더 놀랐습니다. 반평균이 80점대랍니다. 나중에 알았습니다. 이 학교는 학교프린트를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그대로 시험에 냅니다.(이래도 되는건지?)모든 아이들이 교과서 참고서 쳐박아 놓고 학교 프린트만 달달 외웁니다.
-D2중 : 학생수는 중간, 학교만족도는 제일 높은 중학교입니다. 선생님들께서도 열심을 내시는 것 같습니다. (위의 수지고 학생도 여기 출신입니다.) 그런데 너무 정리를 많이 해줍니다. 아이들의 시험 스트레스를 줄여준다고 수행평가반영비율 UP하고 거의 모든 과목에서 시험 전에 예상문제들이 나오거나 담당교과목선생님이 시험전 수업에서 속칭 문제들을 찍어 주십니다. 그래서 수행평가 잘하는 여학생이고 학교 수업시간에 절대 딴짓안해서 힌트를 놓치지 않는 위 학생의 경우 전교권 내신은 당연합니다.
하지만 이렇게 공부한 아이들은 당장 내신은 잘받을 지 몰라도 실력은 되지 않습니다. 앞뒤 다 자르고 무작정 외우거나 정리한 것이 오래가지도 않을 뿐더러 절대 밑거름으로 쓸 수 없습니다. 이 여학생이 그랬습니다. 선생님이 내주신 문제 열심히 외우고 시험 도 잘 봤지만 정작 실력으로 쌓인것은 과장 조금 보태서 NOTHING 이엇습니다. 그리고 좋은 내신을 바탕으로 최고아이들만이 간다는 학교에 갔으니 .....
고교 진학하면 중학때와 상황이 달라집니다. 수업시간에 집중하고 선생님들의 힌트에 주목하더라도 시험이 거기서만 나오지 않을뿐더러 시험 범위조차도 굉장히 광범위합니다. 중학교때와는 엄청 차이가 납니다. 스스로 공부하면서 내용을 중요도에 따라 구분해 내고 나름 체계를 잡아 정리하는 것이 필요한데, 이 학생은 본의 아니게 중학때 학교에서 다 요리해서 먹여준 관계로 그런 것을 훈련받을 기회를 갖지 못했습니다. 수지에서 고전하는 학생들의 상당수가 D2와 H출신들이고 ,의외로 시험 어려웠던 D1출신들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경우가 있다는 얘기를 듣게 되는 것을 보면 저의 분석이 설득력이 없는 것은 아닌것 같습니다.
아이들이 시험스트레스를 받는 것에 대한 우려가 많습니다. 안쓰러운 마음에 떠 먹여주고, 잘라주고 썰어서 입에 넣어 주다보면, 정작 고등학교에 가서 입시를 앞두고서는 아이는 떠 먹지도, 자르고 썰어먹지도 못하는 아이가 될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과유불급.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