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부모/교사] 자유게시판 (자녀와 ID 공유 금지)

최근 발표된 수능 개편안으로 인해 초중학생 자녀를 두신 부모님들의 머리가 많이 복잡해보입니다. 대입은 우리 아이의 인생을 크게 좌우할 수 있는 주요한 이슈다 보니 어떤 방안이 우리 아이에게 유리할지 고민되시겠지요. 그런데 부모님들 상담을 하다 보면 다음과 같이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이 계시더군요.

‘수능이 절대평가로 전환되면 공부 잘하는 최상위권 학생들이나, 특목고, 강남 아이들이 불이익을 받게될거야. 그러면 공부에 관심도 없고 특목고 갈 실력도 안되서 일반고에 갈 수밖에 없는 강북(이나 지방)에 사는 우리 아이가 더 유리해지겠지?’

입시제도가 정시(수능) 하나만 있다면 위의 생각이 100% 맞습니다. 하지만 입시제도는 정시(수능)만 있는 것이 아니지요. 그렇기 때문에 입시에 대한 전반적인 열기가 줄어들지 않은 상황에서 수능만 찍어누르면 다른 전형으로 풍선효과가 발생할 수밖에 없고, 가장 큰 풍선효과가 발생할 것으로 예상되는 전형이 바로 학생부 종합전형입니다.

그런데 학생부 종합전형은 수능 못지않게 공부 잘 하는 최상위권 학생들이나, 특목고, 강남 아이들에게 유리한 전형이지요. 학생부 종합전형에서는 교과 내신 못지 않게 비교과 실적이 중요한데 비교과 실적도 공부 잘하는 최상위권 학생들이나 특목고, 강남 아이들이 잘 쌓을 수 밖에 없거든요.

교내대회를 봐도 매번 수상하는 학생은 내신이나 모의고사 역시 최상위를 차지하는 전교권 학생이잖아요.

각종 교내대회나 동아리, 체험활동 등 학교에서 운영하고 있는 비교과 활동들을 보면 특목고와 일반고가 양 뿐 아니라 질에서도 엄청난 차이를 보이고요. 특목고에서는 원하는 동아리가 없을 경우 학생들이 자율동아리를 개설하고 학교에서도 적극적으로 지원해주지만 일반고에서는 자율동아리를 만들려고 해도 함께 할 친구를 모으기가 어려울 뿐 아니라 학교에서도 협조를 잘 해주지 않으니까요. 

또한, 강남에는 전문 컨설팅 업체 뿐 아니라 일반 학원 중에도 학생부 관리 능력을 갖춘 곳들이 많지만 강북이나 지방에서는 학생부 관리를 해줄 수 있는 컨설팅 업체나 학원을 찾기가 쉽지 않지요.

그렇다 보니 수능이 절대평가로 전환된다고 할지라도 공부에 관심도 없고 특목고 갈 실력도 안되서 일반고에 갈 수밖에 없는 강북(이나 지방) 아이들이 입시 대박을 거두기란 어려울 것으로 예상됩니다.

특목고나 자사고는 내신관리가 어려워서 수능으로 밖에 대학 갈 길이 없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이 계십니다. 그런데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이미 많은 특목고, 자사고들이 대입전략을 수시 위주로 전환했고, 정시보다 수시에서 더 많은 합격실적을 올리는 학교들이 많거든요.
(하지만 안타깝게도 서울 등 수도권에 위치한 일부 특목고, 자사고들의 이야기일 뿐 지방에 있는 특목고, 자사고들은 아직도 정시 위주로 진학지도를 하고 있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학교에서 수시 준비를 열심히 해주려고 해도 지역적 환경(체험이나 봉사활동을 할 수 있는 시설 등)이나 부모님의 지원이 부족해서 비교과 실적을 쌓기가 어렵거든요.)

따라서 수능이 절대평가로 전환되면 지방에 위치한 정시위주의 특목고, 자사고, 자율학교 등은 입시실적에 큰 타격을 입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수도권에 위치한 특목고, 자사고들이나 강남 일반고들은 수능이 절대평가로 전환되도 큰 타격은 없을 것으로 예상합니다. 수도권 특목고, 자사고들은 학생들의 우수한 실력과 부모님들의 적극적인 지원을 바탕으로 입시를 뚫어낼 테고, 강남 일반고들은 대치동 학원가에 있는 전국 최고의 강사들이 길을 열어줄 테니까요.

즉, 입시제도가 바뀌면 이익을 보는 학생들이 분명히 발생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일시적인 약간의 도움일 뿐 전반적인 상황을 뒤집는 변화가 되기는 어렵습니다. 요즘은 학생 혼자서 열심히 한다고 되는 시대가  아니라 학생을 중심으로 학교와 학부모, 거주지역이 한 팀이 되어 함께 싸우는 단체전의 시대니까요.

그래서 수능 절대평가 전환을 가장 반대해야 할 분들은 지방 공립 일반고에 진학하게 될 자녀를 둔 중상위권 부모님들이십니다. 전교 1,2등을 다툴 정도로 공부를 잘하는 학생들은 학교도 입시실적이 필요하기 때문에 수상실적 몰아주기 등을 통해 어떻게든 입시지도를 해주겠지만, 그렇지 않은 대부분의 아이들은 자칫하면 ‘버린 돌’ 취급을 당할 수도 있거든요. 최상위권 일부 아이들의 실적을 쌓아주기 위한 들러리로 전락해버릴 수도 있고요.

따라서 입시제도 변화를 나에게 유리한 쪽으로 자의적인 해석을 하지 마시고 그 뒤에 숨겨진 진실을 보기 위해 눈을 크게 떠보시기 바랍니다. 입시제도 변화는 겉으로 드러난 내용보다 그 뒤에 숨겨진 파급효과를 찾아내는 것이 더 중요하거든요. 누구나 알 수 있도록 대중에 드러난 정보들은 목적성 있는 정보들이거나 이미 효용가치가 없어진 정보들일 수 있으니까요.

추신 1. 아예 공부를 못하면 애초부터 대학은 깨끗히 포기하고 다른 길을 알아볼 텐데 공부도 어정쩡, 꿈도 어정쩡한 대부분의 우리 아이들을 바라보면 안타까운 마음이 많이 듭니다. 조금만 더 열심히 하면 얼마든지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을 텐데, 아이들에게서 ‘조금만 더’ 라는 의욕을 끌어 내기가 너무 어렵잖아요. 이런 상황에서 아이들에게 장래희망을 빨리 정하고 그 꿈을 향한 기록(학생부)을 남기라고 계속 강요하고 있으니 참으로 답답하네요. 제도를 바꾸려면 그 전에 환경부터 바꿔줘야 하는데 환경은 동일한 채 제도만 바꾸니 그 부담이 고스란히 학생, 학부모에게 전가되는 느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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