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부모/교사] 자유게시판 (자녀와 ID 공유 금지)

상가에 조문을 갔습니다. 친한 대학동창을 만나서 식사를 같이했습니다. 친구의 안색이 좋지 않습니다.

"너,무슨 일 있었니?"라는 제 질문에 친구가 힘겹게 입을 뗍니다.

"내 안의 이 분노를 혼자 삭히는게 너무 힘들다. 그리고 그 대상이 내 아들이라는 것이 더 힘들다"

제 친구는 결혼이 늦어서 큰 아이가 이제 고2입니다.(둘째인 딸은 아직 초등생). 결혼이 늦은 만큼 경제적으로는 터전을 잡고 시직할 수 있어서 신혼때 부터 대치동에서 쭉 살았습니다. 그런데 아들이 어릴 때나 초등 때 너무 관리를 안하더군요. 아이들은 그렇게 커야한다나...

"아무리 그래도 어느 정도 공부는 하게 해야지, 저렇게 지 좋아하는 것만 시키면...... 때가 되면 하겠지라는 생각만큼  무책임한 부모는 없다. 너 나중에 정말 후회한다. 내가 그 동안 겪어보니 어릴 때 공부 잘 한다고 다 특목고나 sky가는 것은 아니지만, sky 다니는 아이들 보면 어릴 때 부터 공부 잘했던 아이가 갑자기 철들어 공부해서 온 아이보다 월등히 많다. 나도 그랬었고 너도 그랬잖니. 너도 부산에서 초등 때부터 나름 공부 좀 했었다면서..."라는  조언을 그렇게 얘기해도  그냥 놔두다가, 중학교 올라갈 때쯤 슬슬 공부를 시키려고 한다더군요. 그런데  초등때  공부 안하던 아이가 중학생 되었다고 갑자기 열공하는 학생이 있나요?  초등 때 안 하던 아이가 하고 싶다고  공부가 제대로 꾸준하게되기 쉬운가요? 

친구는 점점 깊어가는 말싸움에 아들과 엄마사이가 험악해질까봐서 친구는 아내와 딸을 캐니다로 보내고 자신이 한국에서 아들을 돌보았다고 합니다. 그 둘이 지낸 1년을 친구는 지옥과 같았다고 표현합니다. 나가서 사고치고 돌아 다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공부를 하는 것도 아니고 계속 반복되는 거짓과 무기력해져가는 아들, 그 모든 것을 아버지로서의 의무감으로  감내하기에는 너무 힘들었고, 이렇게 계속 되다가는 다시는 아들 얼굴을 보기 싫어질까봐서 ,1년 만에 캐나다에 있는 아내를 불러 들였답니다.

"집사람과 아들 사이가 멀어질까봐서 보냈는데,내가 그걸 감내 못하고 다시 불러들인거지. 지금 까지 살면서 난 내가 감당해내지 못할 것은 없다고 생각했었는데(실제로 그 친구는 친구들 사이에서 속 깊고 정많기로 유명합니다)...  경제적으로 안정되면 모든게 다 된다고 생각했었는데 아들이 그러니 세상이 재미없다. 네가 참 부럽다. 그 때 네 말을 들었어야하는 데.."

요즘들어서 예전에는 거부감을 갖고 들었던 조기교육이라는 단어에 자꾸 타당성을 부여하게 됩니다. 물론 지나친 조기교육은 문제가 많지만, 적어도 그 나이에 알아야 할 것은 꼭 공부하고 가야하는데 그렇지 못하니........

식당에서 마구 떠들면서 주위를 곤혹스럽게 만드는 아이들에게 기 죽는다고 혼내지 않는 부모나 마땅히 그 학년에 그 나이에 갖추어야할 것을 나중에 해도 된다고, 그래야 인성이 좋아진다고 스스로 믿으며  방치하는 부모나 뭐가 다를게 있을 까요?

지난 2년간 상담을 거듭하면서 전 정말 학부모들의 그 비논리적인 무대뽀(?)정신에 놀란 적이 한 두번이 아닙니다 어른인 나도 긴 연휴 끝에는 일이 안 잡히는데, 초등6년을  마구 놀고 맘대로 자던 아이가 중학교 되면 갑자기 공부 머신이 될거라고 믿는 근거는 뭔가요?  중학 3년을 게임기와 친하게 지낸 아이가 고교 진학하고 게임기 버리고  열심히 하면 고등 과정에서는 성적역전을 이루어낼수 있다고 믿는 그 자신감은 어디서 나오는 건지요? 오래 전 어린 시절부터 차곡차곡 쌓아온 공부내공을 일순간에 따라잡는 것이 가능할까요? 그렇게 따라잡는 것이 쉽다면 누가 차곡차곡  어린시절부터 내공을 쌓아오겠습니까?

위에서도 말씀드렸지만 공부는 어린시절 잘한다고 커서도 잘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지금 잘하는 아이들은 어릴 때에도 그때 부터 잘했다는 것을 아시면 좋겠습니다. 아들이 과학고 들어가서 보니 같은 학년 100명 중 얼굴 모르는 아이들은 거의 없더랍니다. 어릴 때부터 영재원,올림피아드,... 등지에서 몇년동안 얼굴을 익혔던 아이들이 대부분이라고 합니다.

어제 놓친 한시간을 오늘 하려면 2시간이 필요하다고합니다. 요즘 너무 초중등생들에게 공부를 안 시키는 것 같아서 걱정도 됩니다.  공부 얘기를 꺼내면 마치 아이들 인성에 금을 가게 하려는 사람으로 인식되는 것 같아서....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