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부모/교사] 자유게시판 (자녀와 ID 공유 금지)

저는 어릴떄 아버지가 해외근무가 많으셔서 외국에서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국제학교에서 다니면서 자랐습니다. 대학은 국내에서 나오고 외국계회사에서 근무했습니다. 교포나 외국에서 오랜시간 공부를 한 것은 아니지만, 나름 사춘기를 외국에서 보내면서 느낀 저의 개인적인 경험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외국에서 4년정도 보내면서 영어를 배운 것이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영어로 읽고 쓰고 말하는 것이 자유로우니까, 직장을 구하는 것도 어렵지 않았고, 미국 자격증도 남보다는 쉽게 딸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외국생활을 통해서 영어만 배운 것이라 생각하지 않습니다. 지금까지도 감사하게 생각하는 점은 제가 유학을 다녀온 다음 남들과 내 자신에게 관대해지고, 이해심이 많아지고, 작은 일에 흥분하지 않는 마음의 훈련을 받을 수 있었다는 점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가끔 똑똑하다는 얘기도 들었던 제가 유학 가자마자 말도 안통하는 곳에서 버스도 타기 겁나고, 공부 꼴등하고, 운동도 남들보다 너무 못하고, 여러가지로 해도 내세울 것이 없는 불쌍한 존재가 되었습니다. 황당한 상황이지만 또 살아볼려고 열심히 하면서 영어도 배우도, 친구도 사귀고 했지요. 엄마가 제가 학교에서 3시에 오면 4시부터 6시까지 영어학원을 보내고, 8시부터 9시까지 영어과외도 시켰습니다. 그리고 9시부터 학교, 학원, 과외 숙제를 했지요. 저는 그때 한 6개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과외에 회오리 속에서 살았죠.

또 당시 우리학교는 학생들이 수준별 교육을 받아서 과목마다 친구들이 다르고, 과목을 선택하는 경우도 있어서 교실을 거의 계속 옮겨다니면서 공부했습니다. 교실 이동할 때마다 같이 갈 친구가 없고, 과학실험하는데 짝이 없고, 밥먹으려는데 같이 앉을 친구가 없고, 교실에 가서 앉아있으면 무슨 소리인지 알수가 없고, ESL에 가야 좀 배우는 것이 있는데, 이곳은 우리학교 주류사회와는 거리가 아주 먼 곳이고, 중학교 1학년 때 멀쩡한 인생이 요새말로 한방에 갔습니다.

그때 저는 악착같이 공부를 했습니다. 과외발이었는지, 조기유학 때문이었는지 적응을 잘했습니다. 어려움을 스스로 해결하면서 정말 큰 성취감과 자신감을 얻게되었습니다. 생애최고의 승리...뭐 그런 느낌이었습니다. 그리고 꼴찌를 쭉~ 하면서 꼴찌를 해도 무슨 큰 일이 나지 않는다는 것도 알게되었지요. 한국에 돌아와서도 또 하위권부터 다시 시작했는데 그러면서 한번 두번 좀 못해도 괜찮고, 남들보다 좀 잘한다고 크게 잘난척 할 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게되었습니다. 사춘기때 얻은 자신감과 고생한 경험이 인생에 많은 도움이 된 것 같습니다.

또, 외국에 살면서 도대체 이해가 안되는 황당한 생활방식, 사고방식 같은 것들도 그곳에 오래 살다보면 하나 둘 이해가 되게 됩니다. 그러면서 "세상에 정말 앞뒤 사정 알면 이해 안되는 일이 없구나.." 생각이 들더군요. 다른 민국, 다른 환경에 사는 사람들도 이해가 되면서 제 마음도 그때 많이 성숙해졌던 것 같습니다.

참, 그리고 서양 여자아이들은 15살 16살에는 정말 천사같이 예쁘답니다. 금발 머리 대충 묶고, 회학실험실 스툴에 걸터 앉아서 리포트 쓰고 있으면 정말 화보에요. 그런데 그때 저는 거울 보고 그냥 좌절했습니다. 이건 어떻게도 해결될 수 없는 문제이거든요. 사춘기 때는 이 문제도 정말 아주 큰 스트레스였어요.

진짜 두서없는 글 읽어주신분들 감사합니다. 저의 경험을 통해서 아이들의 마음이 어떨지 헤아려주시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조기유학은 고려하시는 분들은 아이가 겪을 스트레스도 헤아려주시고, 그 스트레스가 긍정적인 방향으로 힘을 쓸 수 있도록 신경써 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